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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정념(情念)으로부터의 죽음

조회 수 1279 추천 수 0 2015.09.13 05:31:30

 

 


경주, 정념(情念)으로부터의 죽음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려 온 장률 감독은 길림 출신으로, 연변대 졸업 후 동 대학에서 소설가 겸 중문학 교수로 일했다. 영화감독인 친구와의 논쟁 중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는 장률. 그의 데뷔작은 <당시>이며 이후 두 번째 장편 <망종>이 2005년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영화 <경주>는 그의 일곱 번째 장편으로 전문 배우와 찍은 첫 번째 작품이란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전작은 모두 비 전문 배우와 작업했다.)


그 가능성의 속성 중 하나는 바로 ‘정념’ 이다. 영화 <경주>는 정념에 사로잡힌 남녀가 빚어낸 비극의 층위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베이징대에서 동북아정치학을 강의하는 주인공 최 현(박해일)은 무려 세 여자와 관계하는데. 첫 여자는 대학 후배 여정(윤진서)이다. 7년 만에 경주에 온 현이 찾는 것은 다름 아닌 여정. 서울에 사는 여정은 현의 호출을 받고 경주에 내려오지만, 단 2시간밖에 없다 냉랭하게 군다. 곧, 현은 여정으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자신이 여정을 임신시켰다는 것. “왜 말하지 않았어?”라 묻는 현에게 여정은 “선배 원래 책임 안지잖아.”라며 비아냥거린다. 이렇게 현은 아주 ‘우연히’ 자신과 관계된 첫 번째 죽음(죽은 아기)을 만나게 된다. 정념이 낳은 첫 번째 죽음.


두 번째 여자는 윤희(신민아)다. 찻집 ‘아리솔’에 7년 만에 들른 현.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은 죽은 창이형과 함께 본 낯 뜨거운 춘화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춘화는 없다. 찻집 주인 윤희는 “손님들이 하도 농을 해 내가 덮어 버렸다.”고 한다. 이어, 춘화를 그린 이가 전 미녀 사장을 흠모하던 한 화가였다 전한다. 순간, 관객에게 춘화는 조선시대 풍속화가 아닌 현실의 포르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한잔하고 하세!”란 춘화 속 한마디와 훤히 드러난 여자 엉덩이에 담긴 ‘정념’의 욕망. 그것을 윤희 남편, 창이 형을 죽인 고통의 원흉으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우울증으로 자살한 윤희 남편, 아내의 외도에 괴로워하던 창이 형 모두 정념이란 감정의 피해자는 아닐런지. 정념이 만든 두 번째 죽음.


세 번째 여자는 현의 아내다. 수화기 너머로만 등장하는 중국 여성의 음성. 그녀는 현에게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리고 “외로운 긴 밤을 홀로 견디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속삭인다. 글이 아닌 ‘소리’로 현의 아내를 등장시킨 영화의 입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직접적인 육성으로 자신의 정념을 현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전날 윤희와 자지 않은 현에게 도착한 보상처럼 읽히기도 한다. 현은 이렇게, 정념이 낳을 뻔한 어떤 죽음을 비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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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정념의 굴레에서 몸부림치는 존재는 바로 현이다. 그는 문을 열어 놓은 윤희에게 다가가지 못한 밤, 호흡과 운동으로 정념을 다스린다. 이때, 떠오르는 중요한 장면. 바로 아리솔에서 현을 스쳐간 창이 아내다. (물론 이 장면은 현실이 아닌 상념이다.) 여기서 창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 살해 당한 거 아니에요. 그 죽음은 창이 씨 스스로 결정한거에요. 하지만 자살은 아니에요 그건 정말 아니죠. 아니고요. 왜 고승들은 자신들이 열반하는 날짜를 결정하잖아요. 최 선생님도 아시죠. 그분들은 죽음의 날을 결정하는 순간에 비록 육체는 속세에 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속세와의 인연을 다 끊어 버린대요. 최 선생님은 이해하시죠? 최 선생님은 이해해주실거죠?”


어쩌면, 그녀의 말처럼 창이는 정념과의 고리를 끊어야 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듯,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아내를 놓는 방법은 그 뿐이었는지도. 창이 아내는 이 모든 것이 남편의 선택이었단 사실을 이해하느냐고, 아니 이해해달라고 현에게 묻고 부탁한다. 어쩌면, 1박 2일의 경주 여행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현은 그제야 자신이 하는 학문을 ‘똥’이라 말할 수 있게 되며 (학문에 가려진) 정념의 정체와 마주한다.


20년 전, 거대한 왕릉이 무수한 도시 경주에서 받은 충격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장률. 결국 그가 건네고자 한 말은 죽음과 거주하는 공간에서도 정념이란 생의 기운은 끓어오르고 있다는 것. 진짜 생(生)이란 고매한 학문도, 차도 아닌 들끓는 정념의 궤적임을 영화는 말한다. 깊은 황차로 번뇌와 욕망을 다스려야 할 때,자작자작한 현악과 함께 온 이 거대한 왕릉의 초상을 우린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될 것이다.


글 / 김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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