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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경제학

조회 수 1385 추천 수 0 2015.10.19 06:01:20

 

 

 

사도세자의 경제학

 

한성안 / 영산대 교수

 

 

대다수 학생들이 강의된 이론의 결론을 중시하며 그것을 암기하는데 바쁘다. 하지만 그 결론은 사실 특정한 가정(assumption)으로부터 도출된 결과일 뿐이다. 결론은 가정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인간이 영혼을 갖는 영적 존재라고 가정하면,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만, 인간이 영혼 없는 물질적 존재일 뿐이라고 가정하면 사후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결론이 도출된다. 상이한 결론이 도출된 이유는 상이한 가정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론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가정이다. 따라서 뭔가를 판단하기 위해 무엇보다 가정을 들춰내 공론의 광장으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결론을 무조건 믿고 암기하지 말자는 말이다. 이 때 이론의 채택 여부는 채택된 가정이 얼마나 과학적이며 현실적이며, 보편성을 갖추고 있는 가일 것이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경제학은 특히 그렇다. , 경제학이야말로 결론의 학문이 아니라 가정의 학문이라는 말이다. 나는 경제학을 비롯해 모든 강의의 절반 이상을 이 훈련을 쌓는데 할애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개방적 사고와 올바른 판단력, 창의적 시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학문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역량이 부족하니 경제학의 가정은 대부분 인문학, 특히 철학으로부터 차용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경제학의 가정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이다. ,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주류이자 보수적인 신고전학파경제학은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고 가정한다. 경제학 분야에 관련되니 이 때 욕망의 대상은 물질과 화폐. 그들의 가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식화하면 물질과 화폐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고전학파경제학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정을 추가한다. 인간에 대한 동질성(homogeneity) 가정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은 같다!

 

이 가정을 욕망에 대한 가정에 결합시키면 욕망에 대한 가정은 다음과 같이 수정된다. 물질과 화폐에 대한 모든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무슨 말인고 하면, 갑돌이와 갑순이는 물론이고 존 록펠러와 테레사수녀, 이완용과 안창호, 이건희와 김구, 박정희와 장준하, 이명박과 노무현, 박근혜와 문재인 모든사람들이 똑같이물질과 화폐에 대한 욕망을 끝없이 불태운다는 것이다.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듯이 물질과 화폐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도 모두가 같다!(마지막 글에 실망스런 부사절을 끼워 넣어 죄송하지만, 근대 시민사회의 고귀한 평등이념이 신고전학파경제학에서 요렇게 몹쓸 방식으로 쓰인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넣은 사족이다.)

 

 

(중략) ....

 

 

오늘 감상평을 서로 나누면서 아내가 똑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영조가 막장드라마를 연출하고 사도가 그것을 인내하는 과정이 추가되었더라면 영화가 재미를 더했을 것 같단다. 그리고 재벌가의 자식들이나 며느리들을 볼 때도 그건 단지 픽션이 아니므로 막장드라마로 폄훼되지 않을 것이란다. 재벌 2세들은 물론 며느리들도 오만가지의 잔소리, 핀잔, 무시를 경험하지 않았나. 왜 그랬을까? 화폐와 물질, 더 나아가 권력에 대한 모든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 아닌가?

 

하지만 사도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에게 화폐와 권력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영조로부터 빛나는 ‘전하’보다 따뜻한 아버지를 원했고, 예법에 충실한 중전과 세자비에게 존중받는 세자보다 사랑받는 아들과 남편이 되기를 원했고, 아들에게는 함께 뛰노는 아빠가 되기를 욕망했을 뿐이다. 화폐, 물질, 권력에 대한 그의 욕망은 결코 무한하지 않았다.

 

내가 좀 오버한 것인지 모르나, 나는 이 영화에서 주류경제학에 대한 이준익 감독의 조롱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인간은 동질적이지 않다. 따라서 화폐, 물질, 권력에 대한 ‘모든’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 않다. 갑순이도, 갑돌이도, 사도도, 테레사수녀도, 안창호도, 김구도, 장준하도, 노무현도, 문재인도 그리고 나도!

 

그러니 엄한 사람 잡아두고 무한한 욕망을 가져야 인생 바로 산다는 엉터리 설교, 그만 걷어 치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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