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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을 재발견하다

조회 수 1244 추천 수 0 2016.05.02 07:56:20




출장간 남편이 집에 돌아와 문을 두드린다. 아내가 문을 열고 맞아주길 원하지만 아무 기척이 없다. 한참을 쾅쾅 두드려대니 아파트 같은 층 사람들이 모두 얼굴을 내민다. 주인이 없나보다라 말하는 이웃에게 남자는 자신이 집 주인이라 밝히고 문을 따고 들어간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한다. 3년 동안 살면서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면서.


아내의 부재.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 혹시라도 집을 나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예감. 하지만 아내는 잠시 친정에 다녀온다는 쪽지를 남겨 놓았다. 오늘 아침 친정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다니러 간다고, 출장간 남편에게는 피곤할 테니 잘 쉬고 있으라고, 밥상은 부엌에 차려놓았다고 적었다. '당신의 아내'라고 끝맺으면서.


하지만 남편은 예정일보다 하루 일찍 왔다. 그런데 아내는 '오늘 아침' 이미 떠나고 없다. 어디로 간 걸까. 남자는 아내가 부재한 집에서 심한 고독을 느낀다. 아내가 씹다 붙여놓은 껌을 입안에 넣는 것으로 '유일하게 위안'을 얻으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뭇잎에 놀던 새여. 왜 그런지 알 수 없네.

낸들 그대를 어찌하리. 내가 싫으면 떠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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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아내가 집을 비운 이유가 자신이 싫어서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그러고보면 소설은 남편과 아내의 불화에 대한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남편은 여전히 아내를 그리워하는 것 같고, 아내는 비록 거짓말이긴 해도 다정한 쪽지를 남겨 놓는 '예의'는 지키고 있으니.


혼자 집을 지키던 남자의 세계는 어느 순간 환상의 공간이 된다. 집안 곳곳에서 물건들이 들썩인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고, 부엌의 석유풍로에 불이 붙고, 재떨이에 생담배가 불이 붙어 타고 있다. 손에 쥐고 있더 스푼이 빠져 나가고, 그가 눈길을 주는 모든 물건들이 일제히 흔들거린다. 가구와 물건들이 말을 붙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다리가 서서히 경직되고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온몸이 굳어오고 ... 그렇게 남자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환상적 반전에 이어 또 다른 반전은 아내의 태도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누군가 침입한 흔적을 발견하지만 잃어버린 게 없음을 발견하고 안심한다. 대신 못 보던 물건이 눈에 띄자 한 동안 '먼지도 털고 좀 뭣하긴 하지만 키스도' 하고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곧 싫증을 내고 다락방에 쳐넣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방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남편에게 친정집에 다녀온다는 쪽지를 또 다시 남기고.


제목만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최인호의 단편 소설 '타인의 방'. 1971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여전히 새롭게 읽힌다. 아마도 환상적 요소와 반전의 묘미가 특별하고, '다 읽히지 않는' 소설이기 때문인지도. 도대체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소설은 부부 간의 불화를 환상과 유머라는 서사적 전략으로 경쾌하게 그리려 한 걸까? 그렇다면 '타인의 방'은 서로 '타인'이 되어 버린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렇게 읽기에는 두 사람 간의 '불화'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다정다감하다(적어도 쪽지를 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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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남편은 혼자 방을 지키다 사물이 되고, 아내는 늘 방을 나갈 궁리만 한다. '사물화'와 방으로부터의 '탈출'은 어쩌면 이 부부가 살게 된 아파트라는 삶의 공간과 관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70년대 건설붐이 일고, 곳곳에 지어진 아파트라는 새로운 삶의 공간이, 어쩌면 이들에게는 '타인의 방'이 되어버린 건지도. 그곳에 거주하는 인간이 소통보다 소외의 삶을 살고 있음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3년간 살았지만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없다니.


이런 설정을 통해 작가는 아파트라는 새로운 삶의 공간이 가져오는 인간의 소외를 섬뜩한 상상을 통해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곳에 주거하는 사람들이 서로 소외되고 '타인'이 되면서, 그 소외는 부부 간의 관계에까지 침투한다.


'아파트 공화국'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이제 아파트는 보편적 삶의 공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은 '타인의 방'인지도. 우리는 어쩌면 그런 삶에 익숙해졌을 뿐인지도. 또 다른 의미에서 아파트는 '타인의 방'이기도 하다. 아파트 바깥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방'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에서 발견한 <타인의 방>. 황석영은 해설에서 "카프카의 <변신>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끔찍하고 명료한 지옥을 보여준다"라고 쓰고 있다. 1970년대 도시적 감수성과 대중성으로 한국문단에 새로움을 더해준 작가 최인호(1945-2013). 그의 소설은 여전히 재발견될 필요가 있다.


원본 출처 : http://blog.naver.com/armidale10/220698775197


문학 전공자다운 분석과 해석.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되는 <서평 쓰기 입문과정>의 강사이지, <서평 글쓰기 특강>의 공저자인 황선애 박사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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