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후기


100일 글쓰기, "틀이 깃들길"

조회 수 1378 추천 수 0 2016.10.16 05:16:56




그동안 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면서 글쓰기의 연속성을 고민해보았다. 100일 동안 열심히 쓰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글쓰기를 잠시 쉬거나 영원히(?) 글을 접는(?) 모습을 봤다. 100일 이후 쉼 없이 계속해서 쓰시는 분들은 드물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휴식 후 다시 시작하시는 분들도 꽤 계시긴 하다.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 한 땀 한 땀 글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00일 동안 그토록 열렬히 쓰신 분들이 100일 이후 글쓰기 장에서 증발해버리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선, 내가 겪은 100일 글쓰기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날부터 쉬고 있었다. 물론 하는 일의 특성상 서평 숙제며 블로그나 페북에 올리는 글, 여러 모임 등에 제출해야 하는 글은 써왔다. 하지만 매일 글쓰기는 당장 집어치웠던 것이다. 어쩌면 100일 끝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만 그랬을까? 혹 그들도 같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미련 없이 뒤도 안돌아보고 글쓰기를 떠난 분이야 계시겠느냐만은 잠깐 쉬고 쉽다, 100일 동안 너무 달려왔다,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글쓰기의 로망이 깨졌다, 현실을 직시했다,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등등의 자기 고백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충분히 공감되는 얘기다. 어릴 적 품던 글쓰기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동경일지 모른다. 초등학생 때 받는 독후감 상, 중학생 때 백일장에 나가 상장을 거머쥔 기억 등을 공유한 사람들은 글쓰기에 막연한 바람을 건다. 사회에 나와 나를 돌아보게 되는 성찰을 하거나 보고서 등 나를 표현할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저 기억 속에 잠겨있던 글쓰기의 환상을 슬며시 꺼낸다.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마침내 글쓰기에 도전한다. 그리고 글쓰기에 환희를 맛보거나 환멸을 느낀다.
 
이런 과정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환희나 환멸 이후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나처럼 숭례문학당과 같은 곳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지지부진하든 일취월장하든 어찌 되었건 글쓰기를 이어간다. 지난달, 작년 초에 100일 글쓰기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써온 분의 진정성 담긴 글을 읽고 정신 차리고 다시 매일 글쓰기를 시작한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당에 아직 발을 들여놓지 못한 분이나 글쓰기와는 한참 거리가 먼 분야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다시 시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환희는 또 다른 동경을 다시 킵(keep)하며 안심하고, 환멸은 이 산이 아닌가베라고 말하며 또 다른 곳을 유랑하게 한다. 둘 다 글쓰기를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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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100일 이후 매일 쓰기는 힘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자연스럽다는 것.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학당으로 오세요, 여기 글 쓰면서 서로 용기 나누는 분들 많아요라며 적극 유치 작전을 펴는 게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학당 홈페이지를 수도 없이 살펴보고, 노크하기 위해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다시 돌아서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모임에서도 용기내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쩌면 이런 결정장애(?)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분들을 이끌어온 내 책임이 클 수도 있다. 나 역시 서평 수업을 듣고 우리 학당에 성큼 들어오지 않았나. 내가 그때 머뭇거림 없이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나를 가르친 분에 대한 신뢰가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거다!’라고 속으로 외치며 걸어들어온 것처럼 여기 학당에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입당’(?)했다.
 
100일 동안 함께 했지만 나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다면 노크조차 하기는 두려운 일일테다. 신뢰 주는 내공쌓기를 제외한다면(이거야 단기간에 이루기 어려운 일이니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다. 100일을 채우고 짐짓 모른 체 그들을 방치하는 것. 그것이 양심상 꺼려진다면 100일을 마무리한 분들이 계속 쓸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틀을 잡아주는 것이다.
 
지난 9월말에 100일을 마친 분들을 오늘 다시 만났다. 3주 만이다. 타이틀은 없지만 정체성은 글쓰기 모임이다. 동일한 책을 읽고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쓰는 모임. 100일을 극복한 9명 중 사정이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 8명이 모였다. 이중 6명이 글을 써왔다. 글쓰기 모임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나도 썼다. 공식적인 모임이 끝난 후 카페에서 담소를 나눴다. 오고가는 말 속에 글쓰기 열정과 지난한 생활이 뒤얽혔다. 글쓰기를 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열망과 몸부림일 수 있다. 강의실 바깥에서 자율적으로 행한 모임이어서였을까. 그들은 한결같이, 신선한 경험이라고,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틀이 언제 생길지는 모른다. 내가 얼마나 함께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지칠 수도 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학당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들은 할까 말까 할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관심이 크지 않은 분들도 있다. 이것들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음 달도 모임을 갖고 싶다고들 했다. 나 역시 글쓰기의 연속성이라는 대의’(?)를 생각하니 모임이 즐거웠다. 신명나는 일은 행운을 부른다. 틀이 깃들기를 희망하며.
 

ㅡ 글 / 최진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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