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책만 같이 읽었을 뿐…“종교 체험처럼 스스로 변화”


등록 : 2014.11.19 15:27수정 : 2014.11.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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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책 읽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내밀한 개인적 독서에서 소통하는 사회적 독서로, 독서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다. 지난 11월12일 서울역 인근 숭례문학당 사무실에서 낭독모임을 하고 있는 독자들의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icon_han21.gif 소통과 공감의 책읽기

황량한 시대를 건너는 방법으로 ‘함께 읽기’를
택한 이들이 이야기하는 공독의 즐거움과 의미


독서가 스펙이 되는 시대다. 기업에서는 직급별 필독서를 통해 인사관리를 하고 학교에서는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과하기 위해 아이들이 독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한다. 한때 기성 권력에 균열을 내는 전복의 무기로 기능했던 책이 오늘 한국 사회에선 잘 짜인 자기계발의 틈새를 메꾸는 이음새로 추락한 처지다.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적과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 훔친다.”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저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독서, 지식을 체득하지 못하고 정보를 약탈하는 독서는 죽은 독서일 뿐이다.


다시 책의 복권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함께, 소리내어 읽고, 책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다. 골방의 독서에서 벗어나 광장의 독서를 꿈꾸는 이들이다. ‘나’를 위한 독서를 넘어 ‘우리’를 위한 독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이들은 도처에서 ‘공독’(共讀)을 통해 다시 책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이 황량한 시대를 건너는 방법으로 ‘함께 읽기’를 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독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_편집자



지난 11월12일 늦은 저녁, 서울역 앞 작은 사무실에 8명의 남녀가 모여들었다. 낭독이 시작되자 누군가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책을 반듯하게 쥔다. 누군가는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책을 읽어 내려가고 누군가는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의미를 새긴다. 책 읽는 모습이 모두 다르듯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무늬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600쪽 분량의 두툼한 인문서적 <인문 고전 강의>(강유원)를 손에 쥔 모습이다.

낭독모임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주부터다. 5년차 회사원 경민성(34)씨는 “고갈되고 공허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책을 좋아해 소설을 한 편 쓰는 것이 삶의 목표일 정도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제대로 책 한 권 들춰보기 어려웠다. 온종일 엑셀 파일 속 숫자만 들여다보는 삶이 고단했다.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같이 해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찬반의 논리를 곱씹어보기도 하고


“고미숙 선생이 쓴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를 보면 혼자 밥을 먹으면 그 에너지가 다 흡수가 안 되고 책도 마찬가지라는 취지의 문장이 나오거든요. 저도 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사람들 속에서 책을 읽어야 기운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


단순히 혼자 독서하기가 어려워서 모임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책읽기 모임을 통해 다양한 이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처음에 인문·사회 분야 서적을 두고 토론을 할 때면 반대 논리를 펴는 분들께 답답함을 느꼈어요. 그렇지만 책이라는 매개가 있으니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더군요. 토론을 위해 직접 논제를 뽑는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찬반의 논리를 곱씹어볼 수도 있고요.” 그는 낭독모임 외에 또 다른 독서토론 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저녁 시간을 책읽기 모임에 안배한다.


‘함께 읽기’의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적어도 현대의 많은 독자들에게 독서는 내밀한 자기 체험에 가깝다. 세계적 작가이자 ‘책 덕후’인 알베르토 망구엘이 저서 <독서의 역사>에 적은 독서 체험은 ‘혼자 읽기’와 ‘함께 읽기’의 차이를 잘 설명한다.


그는 원래 혼자 읽기의 예찬자였다. “나는 나 자신의 독서에 대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독서 장소는 바로 나의 방바닥이었다. 독서는 나에게 은둔의 구실을 제공하거나 적어도 어린 시절 내내 나를 짓눌렀던 고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망구엘이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서점 점원으로 일하던 시절,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를 만나고 나서다. 시력을 잃어가는 문호에게 대신 책을 읽어주며 알게 된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같은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보르헤스가 나에게 안겨준 텍스트 그 자체였다기보다는 광범위하면서도 전혀 막힘 없이 해박하고, 매우 재미있고, 가끔은 잔인하지만 거의 언제나 무시할 수 없는 그의 논평이었다. 그 작품들은 보르헤스의 반응과 나 자신의 반응에 대한 기억으로 더욱 풍요롭게 되었다.”


반드시 대문호와의 독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다. 자기만의 체험을 넘어, 책을 매개로 한 소통이 이뤄질 때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감격이 그의 문장에 각인돼 있다. ‘소통하는 책읽기’를 향한 욕구는 한국 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학교와 지역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독서토론 모임은 지난 몇 년 사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2년 10만 독서마니아 클럽을 결성해 150만 명의 독서마니아를 양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성인의 한 해 독서량 평균 9.2권(201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독서량 꼴찌인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해 한 출판 전문가는 “대개의 독서토론 모임이 입시 준비용 내지 자기계발식 독서에 초점을 맞춘 모임으로 꾸려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공부를 위한 독서, 지식을 쌓기 위한 독서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매체의 발달로 지식은 어디에나 널려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대단치 않습니다. 이제 소통을 위한 독서를 해야 합니다.” -신기수 숭례문학당 대표



“독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최근 <이젠, 함께 읽기다>를 펴낸 신기수 숭례문학당 대표는 “독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공부를 위한 독서, 지식을 쌓기 위한 독서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매체의 발달로 지식은 어디에나 널려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대단치 않습니다. 이제 소통을 위한 독서를 해야 합니다.” 신 대표는 이런 독서야말로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고민하는 개인적인 활동으로서의 독서와 구별되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사회적 활동으로서의 ‘공독’”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한 자기계발식 독서토론을 넘어 ‘사회적 독서, 집단독서’일 때 공독이 가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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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은신

2014.12.23 15: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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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입니다. 계속 실천하여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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