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자의 <정지아 작가 콘서트> 후기

조회 수 5039 추천 수 11 2009.03.27 09:35:02

사람을 인쇄물을 통해 만나는 것과

실제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은,

걸려있는 옷을 눈으로 살피는 것과 직접 입어보는 것의 차이와도 같다.



정지아 작가의 프로필 사진은 짧은 커트머리에 줄무늬 셔츠차림으로, 갓 등단했을 당시의 풋풋한 소년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문학콘서트장 무대에 앉아있는 작가의 모습은 블랙 다이아몬드형 가디건, 블랙 롱부츠와 검정 베레모를 쓰고 있어 예상보다 세련되고 지적이며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멋진 차림새였다.



10여년 전, 병원 대기실의 잡지를 펄럭거리다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다. 당시만 해도 내 이름이 흔하지 않았던지라 눈길이 갔고, 작가의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연상케하는

<지리산의 지, 백아산의 아, 그것이 내 이름이었다>

라고 활자를 키워 인쇄한 소제목이 이데올로기적이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이었다. 그 후로 나는 정지아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지는 않으면서도 그녀 이름의 유래만은 되뇌이고 다녔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작가의 단편집 <행복>을 구입해 읽게 되었고, 일단은 실망했다. 전라도 사투리가 너무 심하게 재현되어 있어 내용판독이 어려울 지경이었고, 작중인물들은 필요 이상으로 음울하고 무거워 보였다.



그래도 나와 이름이 같은 작가에 대한 애정을 지워버릴 수 없어, 최근 <행복>을 다시 꺼내 꼼꼼히 읽고 있는 동안, 그녀의 작품이 2009이상문학상 우수작에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신문광고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봄날 오후, 과부 셋>.타이틀은 매우 평범하게 보였으나, 일독하고 난 후의 느낌은 "의외였다."



하루코, 사다코, 아이코 세 할머니의 삶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으나 소설의 전체적인 터치는 분명히 밝고 화사하였다. 두번 세번 읽고 나서도 그 느낌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때마침 열린 작가의 문학콘서트에 달려가게 된 계기였던 것이다.




문학콘서트에서 선물로 받은 작가의 두번째 단편집이다.

사인을 위해 내 이름을 묻던 저자는,

대답을 듣고나자 약간 놀라시며 큭 웃음을 지었다.

"예전엔 이 이름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엔 많더라구요"라고 하시며~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먼저 읽은 <운명>은 지나치게 우연적인 설정으로 인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진 <스물셋, 마흔셋>에서 무거운 삶을 밝은 터치로 그려내는, 독자로서 내가 정지아 소설에서 원하던 작법을 발견하여 기뻤고,

동시에 뭔가 허전하다 싶던 부분을 불과 2,3년 사이의 기간동안 중견작가다운 숙련된 필력으로 채워넣은 발전에 감탄하였다.



그것은 <세월>에서 난해한 전라도 사투리로만 페이지를 가득 메웠으나 내 사투리 해독능력이 발달한 덕분인지 아니면 어려운 듯 하나 이해할 수 있게 적어낸 작가의 배려 때문인지, 한 사람의 고단한 일생을 사투리에 녹여내었기 때문에 오히려 감동에 복받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흥분으로 연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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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곽원효

2009.03.27 21:46:40
*.146.9.202

...너무나 좋은 후기입니다. 정지아 작가 님에게서 사람의 냄새가 풀풀 납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저 또한 정지아 작가 님에게 빠져들겠는데요..ㅎ...

마류스

2009.03.29 16:50:58
*.50.84.153

후기 작성한 독자입니다. 원래 여기에 올리려고 작성한 건 아니구요...
개인 미니홈피에 썼던 글을 <봄빛> 선물까지 받은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문학콘서트 기사란에 댓글로 달아본 것입니다^^
그래서 인용한 소설제목도 틀렸고 --<스물셋, 마흔셋>이죠...--
쓰다 만 듯 끝마무리가 허술한데 <행복한상상>홈페이지에까지 올려주시고 좋게 보아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작가를 만나볼 기회와 함께 신간서적까지 제공해 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봄빛>잘 읽을께요^^

곽원효

2009.03.30 02:47:12
*.137.144.141

...마튜스 님 글, 매력 있네요."풋풋한", '음울", '무거운", "터치는 분명히 밝고 화사하였다", "고단한 일생" 등 음... 뭐랄까 선택하신 어휘들을 보니 글 많이 써보신 것을 단박에 알겠습니다. "쓰다만 만 듯한 끝마무리"에 묘한 여운이 보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신기수

2009.03.30 09:27:18
*.189.240.234

콘서트 뒷풀이까지 참석하셨던 그 분이시죠? 훈훈한 행사 후기라서 저희 블로그 댓글에 올라온 글을 옮겨놓았습니다. ^^

마류스

2009.03.30 19:55:06
*.117.4.12

아 콘서트 끝나고 따로 모임이 있었나 보네요...
저는 뒤풀이에는 참석하지 못했구요,
그냥 정지아 작가님이랑 이름이 같은(성은 다르구요)독자입니다.
준비를 안하고 가서 작가님께 질문도 드리지 못하고, <행복>에도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무척 아쉽답니다^^ 수고하세요^^

신기수

2009.05.03 21:44:24
*.189.240.234

본문에서 언급하신 --<스물셋, 마흔셋>은 고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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