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이 있는 영화 상영회, "The Reader" 후기

조회 수 4106 추천 수 4 2009.06.13 21:19:02


이것이 아니고 저것이 아니며 아무 것도 아닌, 혹은
이것이고 저것이며 그 모든 것인, "The Reader"

- 원작이 있는 영화 상영회, "The Reader" 후기 -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참석자 대부분의 의견은 ‘참 좋았다’는 것. 내가 이상한 것인가. 내게 있어 이 영화는 지루함이었다. <스티븐 달드리>라는 거장 감독이 만들었다는 것이 다행이지 무명의 감독이 만들었다면 그저 ‘덜 익은’ 영화라고 폄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게 있어 이 영화는 정말 ‘이것이 아니고 저것이 아니며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 남녀 사이의 사랑이야기이지만 열정적이기는커녕 애틋하거나 따뜻하지 않았으며, <홀로코스트>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과 같은 인류사의 비극이 배경이지만 분노케 하지 않았으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악의 평범성>에 대해 사유하게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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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야기로 이해해 주려고 해도 '우스꽝'스럽다. <문맹>을 숨기기 위하여 전범임을 시인하고 감옥에 갇히고,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이상’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 혹은, 사랑하는 여자 <한나>의 형기를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바보’ 같은 남자의 사랑이야기? 사랑이야기로도 어설프다. 차라리 사랑이야기이라기보다 시대의 격동기를 살았던 남녀의 사랑을 눈물과 웃음 없이 보이는대로 정리한 다큐멘터리나 보고서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나 보고서로도 낙제점이다. 감정의 과잉이 없지만 설명이 없어 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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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참석자 박은미님의 이야기처럼, 남자 주인공 <마이클>에 초점을 맞춘 소설 "The Reader"(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를 영화화하면서 여주인공 <한나>의 삶을 중심축에 놓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를 평가해야 하는 영화? 혹은 침묵하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스티븐 달드리>라는 감독의 취향을 보여주는 영화? 그것도 아니라면 참석자 조성진님의 말씀처럼 남녀 주인공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영화?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김민영님의 말씀처럼 <케이트 윈슬렛>과 <랄프 파인즈>의 표정 연기를 봐야 하는 연기지침서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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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생각해보면, 영화 "The Reader"는 이것이 아니고 저것이 아니며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고 그 모든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아니라 영화 외의 것들이 머리 속에 둥둥 떠다녔다. <홀로코스트>, <악의 평범성>,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안네의 일기>,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 대회>,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그 해 여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통치론>, <영토화>, <재영토화>, <가해자와 피해자>, <민족주의와 내셔녈리즘> 등 이런 쓸데없는 조각들이 머리 속에서 떠돌아 다녔으니 어쩌면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 것도 아니면서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감독의 의도였을까?

     그래서인가. 영화가 끝나고 각자 가지고 온 간식을 앞에 놓고 잠깐 이야기하자 하더니 1시간여 이상을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게 했다. 사랑이야기, 성격이야기, 사회철학이야기…. 꽃도 가지각색, 천차반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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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내게 있어 영화로서는 '별로'였다. 지루했다. 감독이 누구이든, 어떤 배우를 캐스팅했던, 배우의 연기력이 좋든 나쁘든, 전후 독일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를 이야기하기 위해 사랑이야기를 끼워 넣는 고도의 영화 기법이든 그것은 영화의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원작 소설을 읽어야 영화가 이해되고, 당시 사회 상황을 분석해야 영화를 볼 수 있다니! 감독은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담아내야 한다. ‘소설 원작이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라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가 영화 외적 요소에 의지해야 한다면 그 영화는 ‘설익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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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신기수

2009.06.15 09:20:33
*.189.240.211

영화와 책이 만나는 수준높은 영화리뷰네요.... 역시 인문학적 지식에 문학적인 감각까지 겸비한 글... ^^

곽원효

2009.06.15 11:54:57
*.146.9.202

...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 리뷰라기보다 솔직하게 제 의견을 냈을 뿐입니다. 좋은 영화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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